
《트로이아 여인들》 (《The Trojan Women of Euripides》)은 고대 그리스 비극 시인 에우리피데스(Euripides)의 대표작 《트로이아 여인들(The Trojan Women)》을 영국의 고전학자이자 그리스 문학 번역가인 길버트 머리(Gilbert Murray, 1866~1957)가 영어 운문으로 번역하고 해설을 덧붙인 판본이다. 사용자가 제시한 책의 표지에는 “Translated into English Rhyming Verse with Explanatory Notes by Gilbert Murray”라고 적혀 있어, 단순한 직역본이 아니라 원작의 극적 운율과 정서를 영어의 운문으로 재현하고 독자가 작품의 역사적·신화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도록 주석을 함께 제공한 판본임을 알 수 있다. 출판사는 런던의 George Allen, 주소는 156 Charing Cross Road로 표시되어 있으며, 당시 대중적인 가격인 “One Shilling Net”으로 판매된 소책자형 판본이었다.
에우리피데스의 《트로이아 여인들》은 기원전 415년에 공연된 비극이다.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그리스군이 트로이아를 함락한 직후를 무대의 시간으로 설정한다.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는 죽었고 왕자 헥토르를 비롯한 대부분의 남성들은 살해되었다. 도시는 불타고 있으며 살아남은 여성들은 그리스군에 의해 노예 또는 첩으로 분배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에는 전쟁의 전투 장면이 거의 없다. 전쟁이 끝난 뒤 폐허 위에 남겨진 사람들의 절망이 작품 전체를 지배한다. 에우리피데스는 승리한 그리스 영웅들의 영광을 노래하지 않고 패배한 트로이 여성들의 목소리를 무대의 중심에 세운다.
작품의 중심인물은 트로이의 왕비 헤카베(Hecuba)이다. 그녀는 한때 강력한 왕국의 왕비였으나 이제는 남편과 자식들을 잃고 노예가 될 운명에 처한다. 작품의 시작부터 헤카베는 자신의 몰락을 인식하고 있다. 그녀의 비극은 단순히 개인적인 불행이 아니라 하나의 국가와 왕실, 가족과 인간적 삶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과정을 상징한다. 에우리피데스는 헤카베의 고통을 통하여 전쟁이 인간에게 가하는 파괴가 얼마나 근본적인지를 보여준다.
또 다른 중요한 인물은 안드로마케(Andromache)이다. 헥토르의 아내였던 안드로마케는 남편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어린 아들 아스티아낙스(Astyanax)의 생명까지 빼앗길 운명에 놓인다. 특히 아스티아낙스의 죽음은 이 작품에서 전쟁의 잔혹성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그리스군은 훗날 성장한 아스티아낙스가 트로이의 복수를 시도할 가능성을 제거하기 위해 어린아이를 성벽에서 떨어뜨려 죽인다. 이 장면은 전쟁의 논리가 어떻게 어린아이에게까지 적용되는지를 보여준다. 군사적 승리를 위해 미래 세대의 가능성까지 제거하는 행위는 승리의 윤리적 정당성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카산드라(Cassandra) 역시 중요한 인물이다. 그녀는 미래를 예언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아무도 그녀의 예언을 믿지 않는다. 카산드라는 자신이 그리스군의 전리품으로 아가멤논에게 끌려갈 것임을 알고 있으며, 동시에 그리스군이 트로이에서 저지른 행위 때문에 장차 불행을 겪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녀의 장면은 작품에서 특유의 아이러니를 형성한다. 다른 사람들이 비극으로만 보는 상황을 카산드라는 더 거대한 역사적 파국의 일부로 바라본다. 그러나 그녀가 알고 있는 진실은 오히려 그녀의 고통을 더욱 크게 만든다.
그리고 헬레네(Helen)가 등장한다. 트로이 전쟁의 원인으로 지목된 헬레네는 메넬라오스에게 다시 끌려간다. 그녀는 자신을 변호하며 자신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헤카베는 강력하게 반박한다. 헬레네의 변론과 헤카베의 반박은 단순한 개인 간의 다툼을 넘어 인간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얼마나 책임을 져야 하는가라는 윤리적 문제를 제기한다. 에우리피데스는 이 장면을 통해 전쟁의 원인과 책임을 둘러싼 인간의 자기합리화를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트로이아 여인들》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전쟁의 승리와 도덕적 승리를 분리한다는 점이다. 그리스군은 트로이를 정복했으므로 군사적으로는 승리했다. 그러나 에우리피데스는 그 승리를 영광스럽게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린아이를 죽이고 여성들을 노예로 만들며 도시 전체를 파괴한 행위가 과연 승리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이 때문에 《트로이아 여인들》은 고대의 전쟁 비극이면서 동시에 모든 시대의 전쟁에 적용될 수 있는 윤리적 성찰로 읽힌다.
길버트 머리의 번역은 이러한 작품을 영어권 독자들에게 널리 소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머리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영국에서 고대 그리스 문학을 영어권 일반 독자에게 소개한 대표적인 고전학자였다. 그는 그리스 비극을 학자들만 읽는 고전 문헌으로 남겨두지 않고 현대 영어의 문학적 언어로 옮기려고 노력했다. 특히 에우리피데스의 작품들을 운문으로 번역하면서 원작의 시적 성격과 무대적 효과를 살리고자 했다.
이 판본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표현이 바로 “English Rhyming Verse”이다. 머리는 고대 그리스어를 영어 문장으로 단순히 옮기는 데 만족하지 않고 영어의 운율과 운문 형식을 활용했다. 이것은 번역의 장점인 동시에 한계이기도 하다. 고대 그리스어의 운율과 영어의 운율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원문의 모든 리듬과 뉘앙스를 그대로 보존할 수는 없다. 그러나 머리의 목적은 고대 그리스 비극을 현대 영어 독자가 실제 문학작품으로 읽을 수 있게 만드는 데 있었다. 따라서 그의 번역은 엄밀한 문자적 직역이라기보다 문학적 재창조와 고전 번역 사이에 위치한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머리의 《트로이아 여인들》 번역에서 중요한 또 하나의 요소는 Explanatory Notes, 즉 설명 주석이다. 고대 그리스 비극은 당시의 신화와 종교, 도시국가의 정치적 현실, 트로이 전쟁의 전승 등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현대 독자가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읽으면 많은 부분을 이해하기 어렵다. 머리는 이러한 간극을 주석을 통해 보완했다. 인물의 계보와 신화적 배경, 지명과 사건, 원문의 문화적 의미 등을 설명함으로써 고대의 텍스트와 현대 독자 사이에 다리를 놓았다.
특히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원전 415년이라는 공연 시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 시기는 아테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수행하고 있던 시기였다. 아테네는 강력한 해상 제국으로 성장하면서 다른 그리스 도시와 섬들에 군사적 압력을 행사했다. 《트로이아 여인들》이 공연되기 직전 아테네는 멜로스 섬을 공격하여 주민들을 가혹하게 처리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때문에 많은 연구자들은 작품 속 트로이의 운명이 당시 아테네의 제국주의적 전쟁과 연결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에우리피데스가 작품에서 멜로스 사건을 직접 언급하는 것은 아니지만, 약자가 강자에게 정복당하고 민간인이 전쟁의 희생자가 되는 상황은 당시 관객에게 매우 현실적인 문제였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트로이아 여인들》은 단순히 “전쟁은 나쁘다”라는 도덕적 교훈을 전달하는 작품으로 축소해서는 안 된다. 작품은 훨씬 복잡하다. 전쟁을 시작하는 명분과 전쟁의 결과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존재한다. 인간은 자신이 정의로운 목적을 위해 싸운다고 믿을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타인의 삶과 가족과 공동체를 파괴할 수 있다. 또한 전쟁의 결과를 가장 심각하게 감당하는 사람은 반드시 전쟁을 결정한 정치지도자나 전투에 참여한 군인이 아니다. 헤카베와 안드로마케, 카산드라처럼 정치적 결정에 직접 책임이 없는 사람들이 가장 참혹한 결과를 감당한다.
이 점에서 여성이라는 관점은 작품의 핵심적인 의미를 형성한다. 고대의 전쟁 서사에서는 전쟁의 주체가 주로 남성 영웅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트로이아 여인들》에서는 남성 영웅들이 대부분 이미 죽은 상태다. 헥토르도, 프리아모스도, 트로이의 전사들도 무대에서 사라졌다. 남겨진 것은 여성과 아이들이다. 에우리피데스는 바로 그들의 시선을 통해 전쟁을 다시 바라본다. 영웅의 명예와 전투의 승리가 사라진 뒤 무엇이 남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작품의 특성 때문에 《트로이아 여인들》은 현대의 전쟁문학과도 연결해서 읽을 수 있다. 난민, 전쟁고아, 민간인 학살, 강제이주, 성폭력과 같은 문제는 고대의 전쟁과 현대의 전쟁 사이에서 형태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에우리피데스가 묘사한 트로이 여성들의 고통은 특정 민족이나 특정 시대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라는 제도가 인간의 삶에 남기는 보편적인 상처를 상징한다.
길버트 머리의 번역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고대 그리스의 언어와 현대 영어권 독자 사이의 시간적 간격을 좁혔다. 그의 번역을 통해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은 고대 아테네의 공연장에서 벗어나 근대 영국과 미국의 독자들에게 다시 살아났다. 특히 운문 번역은 작품을 학술적인 번역문이 아니라 하나의 문학작품으로 읽을 수 있게 한다. 물론 현대의 고전학적 기준에서 보면 머리의 번역에는 빅토리아 시대와 에드워드 시대의 문학적 감수성이 반영되어 있으며, 원문의 언어적 특성을 완전히 재현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오늘날에는 보다 현대적인 직역본과 함께 읽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럼에도 머리의 번역은 고전의 현대화라는 측면에서 상당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그는 고대 그리스 문학을 박물관 속에 보존된 유물이 아니라 현대인이 여전히 읽고 감동할 수 있는 살아 있는 문학으로 만들려고 했다. 《트로이아 여인들》처럼 인간의 고통과 전쟁의 윤리를 다룬 작품에서는 이러한 번역자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결국 《트로이아 여인들》은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적 세계와 길버트 머리의 고전 번역관이 만나는 책이다. 에우리피데스는 트로이의 함락이라는 신화적 사건을 통해 전쟁의 승리 뒤에 감춰진 인간의 고통을 드러냈고, 머리는 그것을 영어 운문으로 옮겨 새로운 시대의 독자에게 전달했다. 헤카베의 절규, 안드로마케의 절망, 카산드라의 광기 어린 예언, 헬레네를 둘러싼 책임 논쟁은 모두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이며, 그 승리가 인간의 존엄을 파괴한다면 그것을 진정한 승리라고 부를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단순한 고대 희곡의 영어 번역본으로만 볼 수 없다. 그것은 전쟁과 인간, 승리와 정의, 국가와 개인, 남성과 여성, 신과 인간의 관계를 동시에 성찰하게 하는 고전문학의 한 형태이다. 특히 머리의 운문 번역과 해설은 고대 그리스 비극을 영어권 독자들에게 문학적으로 전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트로이아 여인들》이 오늘날까지 강한 생명력을 갖는 이유는 트로이라는 오래된 신화 때문이 아니라, 전쟁이 인간에게 무엇을 남기는가라는 질문이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트로이는 오래전에 불탔지만, 헤카베의 슬픔과 안드로마케의 절망, 전쟁의 승자가 자신들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문제는 지금도 반복된다. 바로 그 점에서 에우리피데스의 《트로이아 여인들》과 길버트 머리의 영어 번역은 고대의 비극을 넘어 현대에도 살아 있는 전쟁과 인간성에 관한 문학적 증언으로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