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란 무엇인가?는 20세기 역사학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역사철학 저작 가운데 하나이다. 이 책은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외교관이었던 E. H. Carr가 1961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진행한 강연을 바탕으로 집필한 작품이다. 사용자가 언급한 판본은 역사학자 R. W. Davies가 편집한 제2판으로, 이후 펭귄북스에서 널리 보급되었다. 이 책은 단순한 역사 입문서가 아니라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통해 역사학의 본질과 방법론, 역사가의 역할, 사실과 해석의 관계를 철학적으로 탐구한 고전이다. 오늘날까지도 역사학과 인문학 전반에서 계속 논의되는 중요한 저작으로 평가된다.
에드워드 핼릿 카, 즉 E.H. 카는 1892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그는 케임브리지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고전학을 공부했으며, 이후 영국 외무부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국제정세와 러시아 혁명 문제를 가까이에서 관찰한 경험은 그의 사상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특히 소련 역사와 국제정치 연구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방대한 저작인 《소비에트 러시아의 역사》를 집필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카는 단순한 정치사가가 아니라 역사철학과 국제정치 사상에도 중요한 영향을 끼친 학자였다.
카의 역사관은 당시 영국 역사학계의 전통적 실증주의에 대한 비판 속에서 형성되었다. 19세기 역사학은 흔히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는 태도를 강조하였다. 독일 역사학자 랑케의 영향 아래 역사가의 역할은 객관적 사실을 수집하고 배열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카는 이러한 관점이 환상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그는 역사적 사실이란 단순히 과거에 존재했던 사건이 아니라, 역사가가 선택하고 해석한 결과라고 주장하였다. 바로 이 문제의식이 역사란 무엇인가?의 핵심이다.
책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은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표현이다. 카에 따르면 역사가란 단순히 과거를 기록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현재의 문제의식과 가치관 속에서 과거를 바라보고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완전히 객관적인 역사란 존재할 수 없다고 본다. 예를 들어 수많은 사건 가운데 어떤 사건을 중요하게 다루고 어떤 사건을 무시할지는 결국 역사가의 관심과 시대적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 그는 이를 통해 역사적 사실 자체도 해석의 산물이라고 설명한다.
카는 “사실 숭배”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였다. 그는 역사학자들이 단순히 문서와 기록을 수집한다고 해서 진실에 도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기록 자체도 특정 권력과 시대 상황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과거 사건이 역사적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건이 역사책에 실리고 사회적으로 의미를 갖게 될 때 비로소 “역사적 사실”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역사학에서 해석의 중요성을 크게 강조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카가 극단적 상대주의를 주장한 것은 아니다. 그는 역사가의 해석이 중요하다고 보았지만, 동시에 역사적 연구는 합리적 근거와 자료 비판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역사는 단순한 상상이나 의견이 아니라, 사실과 해석의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는 객관성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절대적이고 완성된 형태로 존재할 수는 없다고 설명하였다.
카의 역사관에는 마르크스주의의 영향도 일부 드러난다. 그는 역사를 단순한 개인 사건들의 집합이 아니라 사회 구조와 역사적 변화 과정 속에서 이해하려 했다. 특히 경제와 사회 조건, 집단적 움직임을 중요하게 보았다. 따라서 위대한 왕이나 영웅 중심의 전통적 역사 서술보다는 사회 전체의 변화와 역사 발전의 방향성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인간 사회가 일정한 진보의 과정을 가진다고 보았으며, 역사 속에는 어느 정도 합리적 방향성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책의 또 다른 중요한 주제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이다. 카는 역사에서 개인의 역할을 인정하면서도, 개인은 사회적 조건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나폴레옹이나 히틀러 같은 인물도 단순히 개인 의지만으로 역사를 만든 것이 아니라, 당시 사회 구조와 시대 상황 속에서 등장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는 위인들의 이야기만으로 설명될 수 없으며, 사회 전체의 흐름과 구조적 조건을 함께 분석해야 한다고 보았다.
카는 또한 역사학이 미래와도 연결된다고 보았다. 그는 역사가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학문이 아니라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역사 속에서 사회 변화의 패턴과 구조를 이해함으로써 더 나은 미래를 모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역사학을 단순한 기록 작업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회과학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문체 면에서 이 책은 비교적 명료하고 논쟁적이다. 카는 어려운 철학 용어보다는 구체적인 사례와 논리적 설명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전개한다. 그러나 동시에 기존 역사학 전통을 강하게 비판하기 때문에 상당한 지적 긴장감을 준다. 그는 독자에게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사고의 전환을 요구한다. 그래서 이 책은 역사학 전공자뿐 아니라 철학, 정치학, 사회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역사란 무엇인가?의 영향은 매우 광범위하다. 이 책은 역사학에서 객관주의와 실증주의에 대한 비판을 본격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후 역사학은 단순한 사실 수집보다 해석과 담론, 권력 관계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발전하게 된다. 특히 후기 구조주의와 문화사 연구에서도 카의 문제의식은 중요한 출발점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물론 비판도 존재한다. 일부 학자들은 카가 지나치게 역사 상대주의에 가까운 입장을 취했다고 본다. 또 다른 비판자들은 그가 역사 발전의 방향성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이해했다고 지적한다. 특히 냉전 시대 이후 소련 체제가 붕괴하면서, 카의 역사 발전관과 마르크스주의적 경향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의 책이 제기한 핵심 질문들, 즉 “누가 역사를 쓰는가”, “역사적 사실은 어떻게 선택되는가”, “객관적 역사가 가능한가” 같은 문제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하게 논의된다.
이 책은 역사교육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이전에는 역사를 단순한 연대기적 사실 암기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했지만, 카 이후에는 역사적 해석과 관점의 중요성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단순히 사건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왜 어떤 사건이 중요하게 다뤄지는지, 누가 기록을 남겼는지, 어떤 관점이 배제되었는지를 질문하게 되었다. 이는 현대 역사교육의 비판적 사고 방식 형성에도 중요한 기여를 했다.
역사란 문엇인가?는 단순한 역사학 개론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과거를 어떻게 이해하고 현재를 해석하며 미래를 상상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탐구이다. 카는 역사를 죽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현재와 끊임없이 대화하는 살아 있는 과정으로 보았다. 그의 책은 독자에게 역사가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선택과 해석, 가치와 권력의 문제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그래서 이 책은 출간 이후 반세기가 넘도록 역사학의 가장 중요한 고전 가운데 하나로 계속 읽히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새롭게 던지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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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단계에서 우리는 역사가가 사실들을 선별하고 정리하여 역사적 사실로 만드는 과정으로 시작된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모든 사실이 역사적 사실은 아닙니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과 비역사적 사실의 구분은 엄격하거나 고정적인 것이 아니며, 관련성과 중요성이 파악되면 어떤 사실이든 역사적 사실의 지위로 격상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역사가가 원인을 탐구하는 과정에서도 이와 유사한 과정이 작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본문중에서